시놉시스

퀴어의 방에 들어간다.

연출의도

원가족과 함께 살며 커밍아웃하지 않은 대부분의 퀴어들에게 집은 왜곡의 공간이다. 일상적이고 사사로운 것들을 검열하는 일상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휴식은 담보되기 어렵다.

성별 이분법과 이성애 규범을 기반으로 한 원가족의 집에서 ‘나와’ 비로소 자신의 살림을 꾸려가기 시작할 때 그는 새로운 '집'의 문을 열고, '가족'을 만든다. 결혼과 재생산이라는 이성애 제도의 루트를 따라가지 않는 퀴어들은 다른 생애주기를 만들어간다. 이것이 시간의 문제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존재를 반영하는 공간을 욕망하는 성소수자는, 퀴어적 삶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퀴어 공간을 만들어간다.

<퀴어의 방>은 웹다큐멘터리로 기획되었으며, 퀴어들의 기억, 가족, 미래 이야기를 공간 중심으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프로그램노트

<퀴어의 방>은 네 명의 ‘퀴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이자, ‘방’이 지닌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다. 퀴어는 (어쩔 수 없이) 한 단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태생적으로) 하나가 아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을 강요하는 척도는 하나이지만, 그 신화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존재(또는 그 명령에 저항하는 존재)는 다양하다.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네 명의 퀴어(피아, 디올, 쏭, 은용)는 서로 다른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방은 집 안에 있거나 그 자체로 하나의 집이다. 즉, 방은 집 제유(提喩)이자 가족의 환유(換喩)다. 네 명의 퀴어가 전해주는 자신의 방에 대한 이야기는, 이 시대의 주거 문제나 가족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 확장의 계기 또는 동력은, 퀴어가 존재론적으로 품고 있는 새로운 ‘관계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를 온전히 포착하고 드러내고 있다는 것, 이것이 <퀴어의 방>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10대에서 30대로 짐작되는 네 명의 인물 중에서 세 명은 이미 부모의 집을 떠났고, 한 명(디올)은 곧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부모의 집을 떠난 세 명은 모두 ‘셰어 하우스’에서 자신의 방을 찾아내었고, 아직 부모의 집에 머무는 한 명은 방 하나를 온전히 자신의 방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서 분투 중이다. 부모의 집이란 대개 (이성애 규범에 기반을 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퀴어는 그 공간 안에서 제대로 숨쉬기조차 힘든 존재의 이름이다. 그 존재가 남보다 더 일찍 ‘독립’을 꿈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독립 또는 자신의 방 만들기가 단순히 ‘홀로 서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있기’를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집을 떠난 세 명은 셰어 하우스에서 공존하는 삶의 기예art를 실험하고 있고, 아직 부모의 집에 남아 있는 한 명의 방 안에는 동물들과 공생적 관계 맺기 시도의 흔적들로 가득하다.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결핍의 징후로 보일 수 있는 이 방들의 모습을 새로운 삶의 형태를 위한 실험의 기호로 읽어내는 것, 이것이 <퀴어의 방>의 태도이자 방법론이다. 퀴어란 단지 남들과 다른 정체성을 소유한 존재들의 이름이기 이전에, 남들과는 다른 관계 맺기의 방식을 욕망하는 존재의 이름이다. ‘퀴어의 방’은 그 새로운 실험의 장소다. 다시 말해서 <퀴어의 방>은 단지 ‘퀴어’만을 영화가 아니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라는 감옥에 수감되어 고통 받는 모든 존재들을 위한 영화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8 프로그래머
변성찬

감독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