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오랫동안 가족과 떨어져 도시 외곽에서 기계 수리공 일을 하는 한 남자, 어느 날 다친 길고양이에게 무심코 먹이를 주기 시작하면서 그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위험천만한 재개발 공사 현장 안의 폐허 더미 속을 남자는 작은 헤드라이트 조명 하나에 의지하며 들어서면서 입으로 고양이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잠시 후 멀리서 나지막한 소리가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남자는 소리를 계속 내며 조금씩 공사 현장을 벗어나는 방향으로 먹이를 놓기 시작하는데….

연출의도

그는 매일 저녁, 약 5Km 거리를 달려가 재개발구역에 사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준다. 그러나 그는 단지 고양이들을 살리기 위해서만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새롭게 공생할 수 있는 터전으로 옮겨 가도록 먹이로 조금씩 유인해 가고 있다. 이 작품은 버려진 길고양이들을 새로운 터전으로 안내하는 한 중년 남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가족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프로그램노트

도심의 불빛이 닿지 못하는 부산 어느 공터.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 위로 옅은 불빛이 와 닿고 누군가 외치는 이름들이 허공에 흩어진다. 친근한 이름의 주인공은 재개발 지역을 떠도는 길고양이들이다. 영화 <보담 : 더 나은 삶을 살아라>는 재개발 지역을 떠도는 고양이와 그들을 돌보는 남자의 이야기다. 그는 재개발 지역 주민이었지만, 현재는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고 여러 공장을 옮겨 다니며 일을 해야 하는 처지다.
영화는 남자의 일상을 조용히 따른다. 도시에서 노동하며 살아가는 별다른 것 없는 일상이지만 고양이를 돌보는 그가 머무는 장소는 대개 인적이 드물고 빛이 없는 어둠 속 공간이다. 사람을 피해 구석진 곳으로 몸을 숨겨야만 하는 고양이들을 만나려면 직접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하나하나 고양이들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러가며 밥을 챙기는 그의 얼굴을 영화 속에서 온전히 보기 힘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보담 : 더 나은 삶을 살아라>는 도시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재개발의 문제점이나 영역 동물의 특성상 재개발 지역에서 속수무책으로 폭력에 노출되는 고양이들의 상황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거나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대신 남자가 머무는 공간을 따라가며 그로 인해 포착되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기다리며 지켜본다. 영화 속 고양이들은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남자가 머리에 쓴 헤드랜턴의 불빛으로 인해 포착된다. 빼곡하게 불을 밝힌 아파트촌 밑으로 깔린 사물을 가늠하기 힘든 어둠. 그 속에서 동그란 불을 밝힌 남자. 불빛 속으로 모습을 드러낸 고양이. 영화가 담아내는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 크게 관심을 두지 못했던 도시의 어느 곳에는 함께 살아가야 할 생명이 숨죽여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는 도시의 어둠에 가려진 존재들을 상기시키다 마침내 스크린으로 시간과 기억이 모두 무너져 내린 공간을 드러낸다. 발가벗겨진 땅의 뒤로 보이는 도시의 모습은 이 땅의 미래가 될 것이다. 도시의 개발과 환경미화라는 명목으로 재개발은 우리 일상에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하루아침에 삶터를 잃어버린 사람과 생명이 그곳에 존재했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스크린에 드러난 도시의 황량한 땅을 바라보며 우리는 남자가 다정하게 불렀던 이름들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오지필름
김주미

감독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