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놉시스

날이 어두워진다.

연출의도

후쿠오카에 머무르고 있을 때 우연히 흥미로운 '시간'을 발견했다. 그 시간 속에서, 인물들을 둘러싼 서스펜스는 빛과 어둠 그리고 시선의 관계 속으로 느리게(혹은 갑자기) 전이될 수 있었다. 하나의 정지된 프레임 안에서 서로 다른 차원의 내러티브들이 교차하고 점멸하는 과정을 구상했다.

프로그램노트

<추방자들>이 0의 시간을 통과해 영화의 물리적 데이터가 소진되는 지점에 도달할 때 쯤 이 작품이 하나의 쇼트로 찍혀진, 또는 영화를 위해 찍혀진 다수의 데이터(클립)들 중에서 선택된 단 하나의 쇼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 할 수 있다. 나는 먼저 이 작품이 시작되고 난 직후 보았던 것들을 가능한 충실하게 묘사해 보려고 한다. 물론 내가 포착하지 못하거나 오해한 순간들이 존재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제일먼저 우측 상단에 작은 불이 켜져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불빛에서 시선을 조금 넓게 확장하면 잎이 없는 앙상한 가지의 나무가 서있고 그 뒤로 전선으로 보이는 것이 횡으로 늘어져있다. 구조물들의 원근으로 인해 이 전선이 카메라가 서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발견되는 불빛과 카메라 사이에 있는 구조물들을 대강 가늠하여 보게 되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불빛을 발견했던 위치 근처에서 한사람이 프레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이 느껴지고 제일 먼저 발견했던 작은 불빛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불빛이 오토바이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 프레임의 왼쪽 가장자리에서 자전거 바퀴가 보여 지고 두 사람이 천천히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온다. 이 찰나에 오토바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우측 가장자리에서 한 사람이 걸어 들어온다. 이 사람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쯤 작은 불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붉은색 자동차가 반대편 왼쪽에서 오는 은색 자동차와 교차되어 지나간다. 이 두 자동차가 교차되는 지점이 중심에서 왼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통해 붉은색 자동차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조금 더 빠르다는 사실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묘사한 장면의 사실들은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전체 쇼트의 3퍼센트 정도의 데이터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약 60초 정도가 재생되고 난 시점이다. 언뜻 보기엔 멈춰진 카메라가 하염없이 흐르는 사건 없는 풍경의 데이터를 더해가고(소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영화가 관성적으로 취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여러 요소들을 방기하고 있다는 관습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데이터가 쌓여갈 수록 영화가 포착하는 시간이 전진하며 나아갈수록 영화의 바깥에 위치해 있던 생활의 풍경들은 운동과 정지 그리고 누적과 소진을 반복하며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비전에 정교하게 포획된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9 프로그래머
오민욱

감독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