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다큐페스티발 2023.03.24(금) ~ 03.26(일) 인디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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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신작전 
모스크바 닭도리탕
시놉시스
나는 꿈속에서 줄을 잡아당기는 사람이다. 어딘가로 초대되었지만 마련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위층에서 국물을 튀기며 쏟아지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누군가는 내게 부당한 심부름을 시킨다.
연출의도
부모님과 북유럽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유명한 미술관을 가고 멋진 폭포를 보았지만 하루에 버스를 10시간씩 타는 일정이었다. 첫 도착지인 모스크바에서는 식탁 위에 닭도리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코펜하겐 해변에서는 등산복을 입은 한국인들이 가득했다. 이동하고 이동했다. 잠시 머물렀던 곳에서는 장소성이 파괴되는 생경한 이미지들만 눈에 밟혔다. 요즘 나는 별일 없이 작업하며 살고 있지만 문득, 자꾸,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지를 살펴볼 때마다 눈의 초점이 흐려진다. 난 어디로 가야 하나.
프로그램노트
영화는 러시아 모스크바 패키지여행의 경험으로 만들어졌다. 여행자들은 전통 수프 ‘보르쉬’나 러시아식 만두 ’펠메니‘가 아닌 닭도리탕을 대접받는다. 식당에서 금발의 외국인은 트로트를 불러주며, 한국인 가이드의 능청스런 설명 아래 관광버스를 타고 어느 동굴을 탐험한다. 광장의 조각상이나 이국적 생김새의 새, 외국어로 쓰인 간판 등의 이미지들도 등장하지만, 이곳이 한국이 아님을 증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스크바 닭도리탕>은 공황장애를 다룬 <덩어리>(2016), 국가폭력 희생자를 향한 애도 <블라인드 필름>(2016), 광주 5.18 댄스필름 <봄날>(2018) 등 개인 혹은 집단에게 닥친 부조리의 형상을, 방법을 달리해 담아온 오재형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이번엔 불편했던 여행의 기억을 꿈 속 갤러리로 탈바꿈해 우리를 초대한다. 입장권을 쥔 당신은 잠에서 덜 깬 듯 초현실적인 목소리를 듣게 된다. “꿈에서 나는, 천을 대신 잡아당겨주는 사람이었다.”
이제 탐정 놀이가 시작된다. ‘천’은 무엇일까. 모스크바 국립 극장의 거대한 벨벳 장막을 상상해본다. 줄을 잡아당겨 천을 열면 이야기는 시작되고, 닫으면 끝난다. 아마도 몽롱한 화자는 우리를 이야기의 한가운데로 데려왔으며 쫒아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감독일 것이다.
그가 초대한 영화적 공간에는 특유의 장소성이 사라져 있다. 제목이나 연출의도 등으로 저 곳이 ‘러시아’임을 유추할 뿐이다. 여행은 지난한 일상으로부터 자처하여 길을 잃기 위해 떠나기 마련인데, 낯설음을 기대한 러시아에서 집 앞 식당에도 있던 닭도리탕을 만나는 일은 실망스럽다. 트로트가 흐르는 관광버스에 실려다니며 이국의 정취에 젖어 들 수는 없다.
모스크바에서는 모스크바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보고, 모스크바에서만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겠다는 욕망은 좌절되었다. 이런 파괴된 장소성에 대한 당황스러움은, 그런 장면들을 갤러리 액자 이미지에 넣어버리는 위트로 극복된다. 일반적으로는 단 한 점, 고유의 아우라를 가진 작품에게만 휴대폰 사진폴더가 아닌 액자가 허락된다. 이로써 고풍스런 액자에 담겨진 단체 관광의 아이러니는, 몰개성을 부추기는 어떤 거대한 흐름에 대한 블랙코미디로 읽힌다.
인디다큐페스티발2019 기획홍보팀
도상희
감독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