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다큐페스티발 20회 기념 특별전 – 혁명을 기념하며
2001년 첫 발을 내디딘 인디다큐페스티발이 2020년에 20회를 맞았습니다. 코로나19로 삶과 영화 향유의 양식을 새롭게 모색하는 와중에도, 관객 여러분과 함께 인디다큐페스티발의 스무 살을 축하하고 싶은 소망을 담아 특별 프로그램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특별 프로그램의 포문을 여는 작품은 지가 베르토프의 첫 장편 <혁명을 기념하며>입니다. 이 작품은 러시아 혁명 1주년을 맞는 1918년에 상영된 뒤 영영 유실된 줄로만 여겨졌다가, 2017년 다시 발굴되어 제작 백 주년을 맞는 2018년에 복원 상영되었습니다. 인디다큐페스티발 탄생을 작은 혁명의 시작으로 여기는 우리는, 혁명을 끌어내고 기록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다큐멘터리의 어떤 기원을 <혁명을 기념하며>에서 재발견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지가 베르토프는 <혁명을 기념하여>를 발표한 뒤 ‘키노 아이’ 그룹을 결성해 집단 작업으로 혁명의 주체가 되는 영화 만들기를 계속합니다. ‘키노 아이’ 그룹이 1923년 발표한 ‘키노 아이’ 선언은 “영화적 진실”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뉴스릴 작업의 중요성을 주창합니다.
이후 그들의 뉴스릴 작업을 계승하는 많은 영화집단이 세계 곳곳에서 등장합니다. 1967년, 미국의 로버트 크레이머와 앨런 시겔 등이 베트남전에 반대하며 결성한 ‘뉴스릴’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뉴스릴’은 주류 매체인 텔레비전과 대결하며, 미국이라는 제국에 맞서는 베트남 민중과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검은표범당 등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들의 대표작 <피플스 워>와 더불어, ‘뉴스릴’이 전쟁 중에 세계로 배급했던 베트남 뉴스 영화 <베트남의 젊은 인형극단>을 함께 소개합니다.
비슷한 시기, 68혁명의 열기가 뜨거웠던 프랑스에서는 노동자가 제작 주체가 되는 영화운동 집단이 결성되었습니다. 러시아 혁명 영화운동을 대표하는 감독 알렉산드르 메드베드킨의 이름을 딴 ‘메드베드킨 그룹’이 그들입니다. 크리스 마커와 마리오 마레, 브뤼노 뮈엘 등 노동자들과 연대한 영화인들이 68시기 노동자 대투쟁 과정을 기록한 결과물에 만족하지 못한 브장송과 소쇼의 노동자들은 제작 기술을 습득해 직접 영화를 만듭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메드베드킨 그룹의 작품 중 크리스 마커·장뤽 고다르 등이 쉬잔 즈데 등 노동자들과 함께 만든 <투쟁하는 계급>,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두 노동자가 사망한 푸조 공장 사태를 노동자들이 기록하고 재구성한 <소쇼, 1968년 6월 11일>을 상영합니다.
제3세계에서도 혁명적 영화 제작으로 해방을 꿈꾸는 영화운동의 불길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작가주의 영화를 지양하고 ‘민중영화’의 방법론을 모색한 볼리비아의 ‘우카마우 집단’을 여기서 빼놓을 수는 없을 터입니다. 호르헤 산히네스와 오스카르 소리아, 리카르도 라다 등이 1967년 결성한 ‘우카마우 집단’은, 볼리비아 토착민의 언어중 하나인 아이마라(aymara) 말로 녹음한 첫 작품이기도 한 산히네스의 장편 <우카마우>(1965)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이번 특별전에 소개되는 우카마우 집단의 <민중의 용기>는 1967년 6월 광산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학살당한 사건을 다룹니다. 바리엔토스 정권은 광산노동자조합연맹 회의를 준비하던 노동자들이 체 게바라의 게릴라군과 동맹을 맺었다는 혐의로 심지어 아이들까지 죽였습니다. 우카마우 집단은 유족들, 특히 노동자들 편에서 함께 싸운 여성들과 함께 학살사건의 책임자를 밝히고 사진 등의 사료를 제시하며 사건을 재구성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피해자들이 자신의 삶을 재구성하며 목소리를 직접 내고 진실을 규명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는 이러한 방법론은 다른 제3세계 제작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칩니다.
예를 들어, 광주항쟁 이후 결성된 서울영화집단이 전남 구례군 농민들과 함께 수세 현물납부투쟁을 재구성한 작품 <수리세>(1984)도 <민중의 용기>를 전범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수리세> 이전부터, 엄혹한 군사독재를 버텨낸 영화제작 집단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특별전 국내 프로그램은, 한국 영화운동과 다큐멘터리 역사에서 여성 제작자들이 중심이 된 집단을 주목합니다.
이번 특별 프로그램이 소개하는 <2분 40초>와 <중복>을 연출한 한옥희 감독은,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시청각교육학과 동료들과 1972년부터 실험영화그룹 ‘카이두’ 활동을 시작합니다. 1974년부터 실험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던 ‘카이두’의 영화는, 전위적 형식을 실험할 뿐 아니라 성·분단 모순 등 당시 사회가 금기시했던 정치 담론까지도 자유롭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편, 1985년 설립된 이화여자대학교 영화패 ‘누에’는 제3세계 영화운동처럼 “일하는 사람을 찍는다”는 민중영화의 길을 모색하며 픽션과 논픽션을 동시에 제작했습니다. 2019년 디지털 복원되어 이번에 상영되는 뉴스릴 <이화뉴스>와 다큐멘터리 <영화운동의 함성>은, 1987년과 1988년을 거치며 한국 사회와 영화운동이 변모하는 상황을 “영화적 진실”로 포착한 소중한 기록들입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학교가 아닌 일터에도 새로운 매체인 비디오로 노동운동을 기록하고 운동의 주체로 활동하는 영화운동집단들이 생겨납니다. 도성희·변영주 등 여성영화집단 ‘바리터’와 서울영상집단 등에서 활동하던 여성 제작자들이 중심이 된 ‘다큐멘터리작가회의’는 <전열>과 <옥포만에 메아리칠 우리들의 노래를 위하여>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노조의 싸움을 치열히 기록합니다.
1989년에 활동을 시작한 노동자뉴스제작단(이하 노뉴단)은 2019년에 결성 30주년을 맞았습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생산 중인 노뉴단의 수많은 작품 중에, 이번 특별전에서는 배인정·이지영 등 노뉴단을 대표하는 여성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제작한 <철로 위의 사람들>을 다시 상영합니다. 이 영화는 2001년 첫 번째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먼저 소개된 바 있습니다. 또, 2001년 이후에도 계속 축적된 실천들이 인디다큐페스티발을 성년으로 키워냈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리하여, 조촐하나 흥겨운 스무 살 생일잔치에 함께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혁명을 기념하며>(1918, 지가 베르토프)
<투쟁하는 계급>(1969, 메드베드킨 그룹 브장송)
<베트남의 젊은 인형극단>(1969, 베트남민주공화국 인민들)
<피플스 워>(1969, 뉴스릴)
<소쇼, 1968년 6월 11일>(1970, 메드베드킨 그룹 소쇼)
<민중의 용기>(1971, 우카마우 집단)
<2분 40초>(1975, 카이두)
<중복>(1977, 카이두)
<이화뉴스>(1988, 이화여자대학교 영화패 누에)
<영화운동의 함성>(1989, 이화여자대학교 영화패 누에)
<전열>(1991, 다큐멘터리작가회의)
<옥포만에 메아리칠 우리들의 노래를 위하여>(1991, 다큐멘터리작가회의)
<철로 위의 사람들>(2001, 노동자뉴스제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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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다큐페스티발2020 프로그램으로 예정되어 있던 ‘동남아시아 다큐멘터리 포럼’(공동주최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2021년으로 연기하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포럼은 해외 초청 게스트와의 상호 교류가 주요한 프로그램인 관계로 현 상황상 원활한 진행이 불가하다고 판단하였으며, 관객 및 참여자 여러분의 안전과 감염 확대 방지를 위해 이와 같이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동남아시아 다큐멘터리 포럼'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송구한 마음을 전하며 모쪼록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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